신비와 합심의 숫자, 천 가지 표정의 11

 

십진법은 0부터 9까지 열 개의 숫자를 사용해 수를 나타내는 방법입니다. 한 자리씩 올라갈 때마다 자릿값이 열 배씩 커지는데, 10을 제외하고 10의 자리로 시작되는 첫 번째 수가 바로 11!! 결국, 십진법에서 11은 두 수가 합해져야 나올 수 있는 숫자입니다. 그러나 11은 단지 숫자만이 아닙니다. 그 속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있기 때문인데요, 11과 함께하는 재미있는 이야기 지금부터 IBK기업은행 블로그에서 확인하세요.

 

축구, 11명이 만들어내는 팀워크

 

축구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중 기원전 고대 그리스에 있었던 '하르파스톤(Harpaston)'이라는 경기가 축구의 원조라는 의견이 우세한데, 고대 그리스 벽화에도 축구와 비슷한 공놀이를 하는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죠. 하르파스톤은 로마에도 전파되어 군대 스포츠인 '하르파스툼(Harpastum)'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축구가 지금 같은 모습을 갖춘 건 19세기 초 영국에 축구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입니다.

 

그런데 초기에는 각 팀에 인원 제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십 명이 우르르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일도 다반사였죠. 선수가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가는 건 당연지사, 복잡하기도 하고 사고도 속출했습니다. 그래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 당시 인기 스포츠였던 크리켓에서 힌트를 얻어 축구도 한 팀이 11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로써 영국 축구협회는 "경기는 두 팀에 의해 이루어지며, 각 팀 선수는 11명을 초과할 수 없다"는 규칙을 19세기 후반에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축구가 한 팀이 11명으로 정해진 이유에 대해 또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9세기 당시 영국 사립학교에서 운영하던 기숙사에는 방 하나당 정원이 열 명이었습니다. 각 방 학생 열 명과 방장을 포함해 11명이 각 방의 자존심(?)을 걸고 대결을 벌였기 때문에 11명으로 고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각 선수에게 부여되는 등 번호 중 11번은 가장 발이 빠른 공격수가 차지합니다. 그래서 100m 달리기를 11초 만에 뛸 수 있을 정도로 빨라야 11번을 달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1970년대 한국 축구의 간판스타였던 차범근도 등번호 11번을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습니다. 축구는 이래저래 '11'이라는 숫자와 인연이 깊습니다. 엄청난 긴장감을 몰고 오는 승부차기의 거리가 골대에서부터 11m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승부차기를 '11m의 러시안 룰렛'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의 공인구 '자블라니(Jabulani)'는 11가지 색깔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에는 아디다스의 11번째 월드컵 공을 상징하는 의미도 있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11개 부족과 언어를 상징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공포를 느끼는 높이 11m

 

사람은 11m 상공에서 가장 극심한 공포를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군사훈련 시설이나 놀이기구는 대개 11m 높이로 설치됩니다. 그런데 '왜 11m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속 시원한 답변이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가설만이 '11m 공포설'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건물을 올려다볼 때 사람의 눈이 측정할 수 있는 최고 높이가 11m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보다 높으면 착시 현상 때문에 높이에 대한 감각이 둔화된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11m에서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 땅 위에 있는 것들이 대략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11m보다 아래에서는 물체가 선명하게 보이니 '떨어져도 죽지는 않고 다치기만 하겠다'라고 생각하는 데 반해, 그보다 높은 곳에서는 물체가 식별되지 않으니 '여기서 떨어지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 공포심이 더하다고 합니다. 

 

세 번째 주장은 물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낙하하는 물체에는 중력이 자용하는데요, 그래서 낙하하는 방향으로 가속도가 붙어 아래로 내려갈수록 속도가 점점 빨라지게 됩니다. 이를 '등가속도운동'이라고 하는데요, 이 얘기는 어디까지나 공기 저항을 무시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합니다. 공기나 물 같은 유체 속에서 낙하하는 경우는 가속도가 무한정 붙지 않습니다. 마찰로 인한 저항이 생기기 때문이죠.

 

즉, 유체 속에서 낙하하는 물체는 처음에 등가속도운동을 하다가 어느 지점이 되면 마찰력 때문에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게 되는데, 이때의 최종 속도를 '종단속도(終端速度)'라고 합니다. 만약 종단속도가 없다면 비를 맞을 때 어떻게 될까요? 저 높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질 때 쯤이면 엄청난 가속도가 붙어있을 테고, 그렇다면 우리 머리가 온전할 리 없겠죠? 물론 그 때문에 우산이 필요한 건 아니랍니다.

 

그렇다면 종단속도와 11m는 무슨 관계일까요? 사람이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종단 속도가 바로 11m이기 때문이죠. 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11m가 지나면서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적응할 여유가 생깁니다. 하지만 11m는 그럴 시간도 없이 바닥에 떨어지기 일보 직전에 종단속도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11m가 50m나 100m 보다 더 두렵다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공포심이란 심리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물리적 개념인 종단속도와 공포심을 연결하는 건 무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11월, 독일 쾰른 카니발에 얽힌 이야기

 

독일 쾰른에서는 11월 11일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사육제(謝肉祭)가 시작됩니다. 원래 사육제는 금욕과 절제의 기간인 사순절에 앞서 고기와 술을 마음껏 먹고 마시며 즐기는 축제인데요, 사육제를 한자로 풀어보면 사례할 '사(謝)'자와 고기 '육(肉)'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사례할 '사'자에는 '물러나다'라는 뜻도 있어, '사육'이 고기에서 물러난다는 뜻이 되었답니다.

 

사육제를 뜻하는 영어 단어 '카니발(Carnival)' 역시 어원적으로 보면 라틴어 '카르네 발레(Carne Vale)', 즉 '고기는 그만'이라는 의미입니다. 한자로 보나 영어로 보나 사육제는 사순절을 염두에 둔 축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육제는 프랑스 니스카니발, 이탈리아 베네치아카니발, 브라질 리우카니발 등 가톨릭 전통이 있는 국가에서 주로 행해지며 사순절이 시작되기 3~7일인 2월에 주로 열립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독일 쾰른의 카니발은 11명으로 이루어진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11월 11일 오전 11시 11분 카니발 왕자를 선출하면서 비로소 축제가 시작됩니다. 카니발 왕자는 축제 기간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 자리를 빛내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보살은 얼굴이 11개, 사람은 장기가 11개

 

불국사 석굴암에는 본존불인 석가여래상 뒤에 '11면 관음보살'이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관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을 줄여 부르는 말로, 관자재보살이라고도 하는데요, '관세음(觀世音)'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본다는 뜻이며, '관자재(觀自在)'는 세상의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보살핀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관음보살은 자비로 중생의 괴로움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하는 보살입니다.

 

11면 관음보살은 말 그대로 얼굴이 11개인데요, 정면에 3면, 왼쪽에 3면, 오른쪽에 3면, 뒷면에 1면, 정상에 1면 등 모두 11면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면과 왼쪽, 오른쪽, 위아래의 얼굴을 가리키는 용어도 제각각 다르며, 관음이 이처럼 다양한 얼굴을 가진 것은 여러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랍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얼굴이 11면일까요? 불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우주 공간을 10방위로 보는데요, 동서남북 4방에, 그 사이에 있는 동북, 동남, 서북, 서남의 4유(四維)를 더해 8방, 여기에 위아래 2방을 합해 10방입니다. 이 10방을 토대로 여기에 우주의 중심을 하나 더하면 11방이 되어 삼라만상을 다 통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관음보살의 얼굴이 11개인 이유입니다.

 

한편, 음양오행 이론을 바탕에 둔 한의학에서는 인체를 하나의 소우주로 봅니다. 이에 따라 한의학에서는 사람의 내부 장기를 '오장육부(五臟六腑)'라고 말하는데요, 윈래 오장육부는 한자로 '五臟六府'로 표기했으나 뒤에 '五臟六腑'로 바뀌었습니다. 원래 표현을 감안하면 왜 오장에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이 속하고, 육부에 대장, 소장, 쓸개, 위, 삼초, 방광이 속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장(藏)은 간직하다, 품다, 저장한다는 뜻이 있고, 부(腑)는 창고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내부가 차있는 장기가 '장'으로 분류되고, 창고처럼 비어있는 장기가 '부'로 분류됩니다. 더불어 장은 음을 나타내고 부는 양을 나타냅니다. 어쨋거나 오장과 육부를 합치면 우리 몸은 모두 11개의 장기가 있는 셈입니다. 물론 한의학적 관점으로 볼 때 말이죠.

 

그런데 몹시 애가 탈 때 '오장육부가 썩는다'라고 하는 걸 보면 오장육부가 단지 장기만을 가리키지는 않는 듯합니다. 오장육부는 때로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결국 마음을 바르게 가져야 오장육부가 건강할 수 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11은 9와 2가 됐든 3과 8이 됐든 두 개의 숫자가 합심해서 뭉쳐야 나올 수 있는 숫자입니다. 다른 대상에 기꺼이 진심으로 다가가는 마음, 그것이 바로 11이 품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출처: IBK기업은행 사보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