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매직넘버, 9를 알면 시야가 열린다

9만큼 마케팅에서 자주 활용되는 숫자도 흔치 않습니다. 가장 높은 한 자리 숫자인 만큼 최상 또는 최고의 의미를 전달하기에 좋은 뿐 아니라, 10에서 하나가 부족하다는 점은 가격표에 사용했을 때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안성맞춤인 까닭입니다.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라는 사실도 9의 활용도를 높이는 요인입니다. 우리 일상 곳곳에서 매직 넘버로 활약하고 있는 9의 행로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지름신을 부르는 가격의 비밀

 

물건 값이 10,000원이나 20,000원일 때는 지갑을 꽁꽁 여미는 사람도 9,900원이나 19,900원일 때는 마음의 빗장을 조금쯤 풀어 버립니다. 단지 100원 차이일 뿐이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력은 그 이상이죠.

 

예컨대 가격이 20,000원이라면 만 원짜리 2장이 필요하지만, 19,900원이라면 만 원짜리 1장과 천 원짜리 몇 장만 있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계산하기 불편한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소셜 커머스 사이트나 마트들이 이런 방식을 취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기 때부터 시작된 이런 가격 정책은, 처음엔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직원들을 단속하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물건 값은 1달러, 2달러 하는 식으로 딱딱 떨어지는 숫자였는데요, 그러자 생활이 어려웠던 가게 직원들이 물건 값을 받아서 그대로 자기 주머니에 착복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거슬러 주기 위해 금고에서 꺼낸 돈이 없기 때문에 표도 나지 않았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0.99달러나 1.99달러 같은 가격제였습니다. 거스름돈을 주기 위해서는 손님에게 받은 돈을 금고에 넣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돈을 슬쩍하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숫자 9는 그렇게 가격표 안으로 들어왔고, 그것이 매출 증대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들이 나오면서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가격 정책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100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지만, 100원의 힘은 그 옛날보다 커진 셈입니다.

숫자 제품명은 또 다른 품질 보증서

 

'구증구포(九蒸九曝)'라는 말이 요즘에는 차(茶) 제품에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9번까지 찌고 말리지 않아도 되는 제품들이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그만큼 최고의 정성을 다해 만든 최상의 제품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숫자 9는 제조 방식뿐 아니라 제품 이름에도 쓰여 최고급 혹은 완벽이라는 의미를 부여합니다. 특정 숫자를 활용해 제품의 특징을 부각하는 이른바 '뉴메릭 마케팅(Numeric Marketing)'의 일환이죠. 기아자동차가 만든 K9은 K시리즈의 완성이라는 의미이며,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EQ900 역시 기존 에쿠스의 위상을 바탕으로 한 최상위 제품이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또 냉장고∙에어컨∙스마트폰∙오디오 등을 만드는 가전회사들도 최상위 레벨의 제품명에 9를 넣는 경우가 많은데, T9000, L9000, Q9000, EG9700, A9 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시리즈일 경우 번호가 높은 것이 더 좋은 제품으로 예컨대 Q9000보다는 Q9500이 더 앞선 제품이라는 뜻입니다.

과일 스티커로 유기농 과일 고르는 법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백화점이나 마트만 가도 세계 각지에서 수입된 온갖 과일들을 구입해서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맛 좋은 과일이라도 어떤 방식으로 재배되었는지를 알아야 믿고 살 수 있죠! 과일 스티커에 씌어 있는 숫자, 즉 'PLU(Price-Look UP) 코드'의 비밀을 알면 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PLU 코드는 제품의 가격과 재배 방법을 알려 주는 4자리 혹은 5자리의 숫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도 숫자 9는 자신의 남다름을 과시합니다. 주부들이 선호하는 유기농 과일에 재빨리 자신의 자리를 꿰찼기 때문입니다. 즉, 스티커의 숫자가 9로 시작한다면 그 과일은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가 하면 일반 재배 방식으로 기른 과일에는 3이나 4로 시작하는 숫자가 붙습니다. 농약을 쳤을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습니다. 83이나 84로 시작하는 숫자는 원래 유전자 변형 농산물에 부여하려고 했으나 그런 의미로 사용된 적은 아직 없습니다. 그래서 향후 83으로 시작하는 숫자는 일반 재배 방식의 과일에, 84로 시작하는 숫자는 유기농 재배 방식의 과일에 사용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다만 주의할 것은 현재로선 PLU 코드를 붙이는 게 의무 사항이 아니라 선택 사항이라는 사실! 이 숫자를 맹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세 걸그룹의 필수 조건?

 

아이돌 그룹의 지형도에 둔감한 사람이라도 '소녀시대'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9명(지금은 8명)으로 구성된 이 걸그룹이 결성된 지도 어느새 올해로 9년 째입니다. 이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비슷한 때 데뷔한 원더걸스나 카라에 비하면 월등히 많은 숫자였습니다.

 

9명이 뿜어내는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9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거나 좌우대칭을 만들면서 선보이는 칼군무는 무대를 압도하며 많은 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여기에 저마다 개성을 살린 솔로 및 유닛(unit) 활동은 팀의 인기를 높이는 견인차 역할을 했습니다.

 

소녀시대의 성공 덕분일까. 9명으로 걸그룹을 구성하는 게 이제는 예삿일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수가 달라졌지만 나인뮤지스도 처음에는 9명으로 출발했으며, 티아라도 한때 9명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한 적이 있을 정도입니다. 현재 가장 '핫'하다는 트와이스를 비롯하여 구구단이 9인조 걸그룹의 계보를 잇고 있습니다.

 

무심히 지나갈 수 있지만,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면 의미를 갖는 것이 많습니다. 숫자 9처럼 우리 주변에서 의미 있는 반복을 찾아보는 것도 내 삶을 다시 보는 새로운 즐거움입니다.

출처 : IBK 기업은행 사보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