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거품 붕괴가 아닌 인식 전환의 시작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AI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어 놓고 있는지 보여준다. 하나는 AI 관련 기술주들의 거품이 빠지거나 실적 우려가 커지면서, 관련 분야의 모든 주식들이 한꺼번에 폭락한 사건이다. 빅테크 기업에서 소프트웨어, SaaS 업종, AI 인프라 관련 반도체, 금융·법률·부동산서비스 등 각종 데이터를 생산·가공·판매하는 기업군에 이르기까지 AI 관련 주식의 트릴리언 달러급 가치가 소멸되었다.
시장은 AI로 돈을 버는 기업과 잃는 기업을 구분하기 시작했으며, 빅테크에 대한 잣대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결과 돈은 필수 소비재, 유틸리티 등 AI와 별 관련이 없고 현금흐름이 탄탄해 보이는 기업으로 피난했다. 이 머니무브를 놓고 한 유명 컬럼리스트는 ‘AI가 세상을 망가뜨릴 거라면, 망가질 산업을 미리 공매도하고 돈을 벌자’라고 냉소했다.*
또 다른 하나는 고용시장이 가장 유연한 미국에서 관리직, 전문직 화이트 칼러를 중심으로 1월 일자리 감소폭이 2009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2025년 내내 테크, 금융, 컨설팅, 미디어 등 고숙련 화이트컬러 직종에 대규모 해고사태가 일어났으며, 고용시장은 여전히 그 연장선 위에 있다. 한편 2025년 1~11월 기간에 117만건이 넘는 해고가 단행되었는데 전년 대비 54%p가 넘는다.
이 두 사건은 AI 버블 붕괴 공포보다는 AI가 기존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실제로 대체하기 시작했다는 인식의 전환에서 비롯했다. AI가 언젠가 바꿀 것이라는 ‘기대’가 지금 바꾸고 있다는 ‘현실’로 바뀐 것이다.
* M. Levine. (2026.2.12일). The AI Whateverpocalypse Trade. Bloomberg.

기능의 분해와 기업 경계의 축소
AI 스타트업 기업 앤트로픽(Anthropic)의 법률 AI 툴이 촉발한 앤트로픽 쇼크는 상징적 사건이다. 전문직·화이트칼라 업무의 직접 대체 가능성을 시장이 처음으로 주가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피해 대상 기업은 AI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이 아니라 AI에 의해 기능단위로 분해될 수 있는 기업들이다. 기업 내부의 특정 기능들이 AI에 의해 기업 밖으로 외주화 되고, 기능이 (사람·조직·물리적 설비 대신 코드·데이터·알고리즘 같은 무형자산으로 전환함으로써) 무형화될 수 있다는 공포가 이들 기업의 가치를 재평가했다. 불확실해진 기존 기술기업의 지위가 닷컴버블 당시와 큰 차이다.

자본과 노동의 비대칭적 재편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구조조정은 단순한 경기침체가 아니다. 경기가 나빠서라기보다는, 앞으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서 단행하는 해고인 것이다. AI가 직접 원인으로 언급된 해고는 일부에 불과하며, AI 도입을 전제로 미리 조직을 슬림화해서 다시 채용하지 않겠다는 고용의 비가역적 축소를 시사한다. 1980년대 초 워드프로세서 도입이 타이피스트를 불필요하게 했듯이 AI의 범용기술이 초래하는 구조적 실업이 일어나고 있다.
자본과 노동의 비대칭적 조정속도는 이 두 사건의 연결고리다. 자본시장은 미래 기대를 주가조정으로 즉시 반영하지만 고용시장에서 해고와 조직개편은 느리다. 고용의 조정은 법·계약과 같은 거래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본에 비해 시간이 지연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 결과 자본에서 노동의 순서로 조정이 일어나게 된다.
요컨대 지금의 상황은 AI 거품 붕괴가 아니라 AI에 따른 자본과 노동의 재편을 자본시장이 선반영하는 과정이다. AI가 성장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너무 빨리 쓸모 있어졌다는 인식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인 것이다.

AI의 인프라화와 새로운 질서의 구축
구글이 올해 AI 관련 자본지출을 최대 1850억 달러까지 전년 대비 두 배로 늘릴 계획을 발표한 것이 세 번째 사건이다. 최근 모회사 알파벳은 성황리에 100년 만기 초장기채권을 발행했다.
여기서 주가는 흔들리는데, 왜 구글은 굳이 이 시점에서 당초 AI 거품론을 야기했던 마이크로소프트, 메타를 좇아 투자를 확대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 퍼즐이다.
AI가 기술 옵션이던 시기에 기술기업은 높은 기업가치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AI가 당장의 대체기술로 인식되는 순간, 이들 기업에 대한 평가가 흔들린 것은 AI 기대가 꺼진 것이 아니다. 대신 AI에 직접 노출된 기업뿐 아니라 그 기능이 분해될 수 있는 모든 기업이 재평가됨으로써 기존 기업의 안전지대가 꺼진 것이다.
반대로 구글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판단이 작동하고 있다. AI는 광고 효율, 클라우드 수요를 확대하고, 사용자 이탈을 막는 잠금효과를 일으킨다. 구글은 AI가 과잉이 아니라 AI 인프라가 병목이라고 인식한다.
구글의 투자확대는 기업의 디밸류에이션과 고용축소 흐름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구글이 AI 인프라를 내부화하는 가운데 다른 기업은 AI 기능을 외주화·무형화하며, 자본투자가 폭증하는 가운데 다른 기업은 고용조정을 하고 있다. 구글의 장기 지배력 강화가 다른 기업에게는 단기 생존압박으로, 같은 AI 충격에 대한 승자형 대응과 방어형 대응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금 벌어지는 세 사건은 AI 거품의 붕괴가 아니라, AI가 선택 기술에서 전력산업과 같은 필수 인프라로 전환되면서 자본은 인프라 기업으로, 노동은 조직 밖으로 재배치되는 과정이다. 주가하락은 기존 질서의 균열을, 고용조정은 기업경계의 축소를, 구글의 초대형 투자는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는 것을 의미한다.

※ 본 콘텐츠는 외부 전문가가 작성한 글로 금융·경제에 대한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IBK기업은행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는 점 참고 바랍니다.
'인사이트 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경제현상을 잘 이해하려면 계절조정과 기저효과를 왜 알아야 하나? (0) | 2026.02.19 |
|---|---|
| 인공지능시대의 기업 (0) | 2026.01.22 |
| 외환수급 불균형으로 환율이 오른다는데… 그 의미가 무엇일까? (0) | 2026.01.15 |
| 저출산의 경제학 (0) | 2025.12.25 |
| 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가? (0) | 2025.12.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