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인구전망과 출산율 하락의 시작
2024년 UN이 발표한 세계인구전망에 따르면 현재 80억 명 남짓한 세계인구는 금세기 후반 100억 명에 이른 후 하향 안정세를 보인다. 이에 따라 합계출산율도 꾸준히 감소해 21세기 후반부터 대체율*이 2.1명 미만으로 하락할 전망이다.
나라와 지역에 따라 인구전환의 단계와 속도는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성장하면서 자녀를 ‘양(量)에서 질(質)로 대체’하면서 출산율이 낮아지고 고령화가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이 공통적인 현상은 출산이 경제적 동기에 의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대체율: 한 나라의 인구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평균 출산율. 여성 1명이 평생 2.1명의 아이를 낳아야 인구가 유지됨.

경제학으로 본 출산 결정의 구조
경제학적 측면에서 자녀의 출산에 대한 의사결정은 대학 경제원론에서 소개되는 소비자가 일정한 예산하에서 사과와 배를 선택하는 문제와 그 본질이 같다. 차이는 자녀에 대한 애타주의(Altruism)*가 자녀의 행복이 부모 행복의 일부로 작용한다는 데 있다. 1)
이 차이는 한편으로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애타주의는 다시 그 자녀가 그 자녀의 자녀에 대한 애타주의로 연결된다. 따라서 자녀는 부모가 미래 효용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매개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의 예산은 자신의 소비활동뿐 아니라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소요되는 양육비용으로 지출된다. 양육비용은 자녀의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를 포함하며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가 많을수록 자녀가 벌어들이는 소득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애타주의(Altruism): 사랑을 주의로 하고 질서를 기초로 하여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타인의 행복과 복리의 증가를 행위의 목적으로 하는 생각
1) 출처: G. Becker and R. Barro. (1988). A Reformulation of the Economic Theory of Fertility. Quarterly Journal of Economics, 103(1).

출산 감소를 유발하는 경제적 요인들
이와 같은 접근방법은 출산이 어떻게 경제적 동기에 의존하는 지를 구체화할 수 있다. 우선 당연하지만 양육비용이 높아질 때 출산은 줄어든다. 그리고 여성의 사회진출은 출산의 기회비용을 높여 출산을 지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며 이때 출산율이 하락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자녀가 많을수록 부모의 행복수준은 높아진다. 그러나 동시에 자녀의 인적자본에 더 많은 투자가 동반되지 않는 한 그 자녀들의 행복수준은 하락하게 된다. 따라서 부모의 행복수준도 낮아지는 상충관계가 일어난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자녀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기준이 높아지기 때문에 많은 자녀를 낳아 값싸게 키우는 대신 적은 수의 자녀에게 더 많은 투자를 하게 된다. 여기에 양과 질의 대체관계(From quantity to quality)가 성립하며 경제가 성장할 때 출산율이 하락하는 현상을 설명한다.

경제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문화적 요인
그러나 경제학적 접근만으로는 문화변수와 같은 비경제적 동기에 따른 저출산 현상은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과 같은 압축성장을 이룬 나라들, 일본과 일부 체제전환국 그리고 EU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이태리는 전통사회에 대한 인식과 관행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출산이 애타주의가 아닌 사회적 책무로 당연시되고 출산 후 직장으로 복귀가 어려워 출산이 자기희생으로 인식될 때 여성은 합리적으로 출산을 회피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출산포기 유형과 정책의 재설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출산의 경제학은 풍부한 정책함의를 제공한다. 출산을 포기한 부부를 가정해 보자. 자녀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부부는 자녀 양육비를 아낀 덕분에 자신들을 위한 지출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그런데 이들이 출산을 포기한 것은 최적 선택의 결과라는 데 유의할 필요가 있다. 출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효용이 커진 것이지 당초 자신들의 효용을 늘릴 목적으로 자녀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즉 이 부부는 ‘자녀 수’라는 선택변수를 결정함에 효용을 극대화한 해(解)*가 자녀 수=0이 된 것이다.
출산포기의 이유로는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 자녀에 대한 애타심에도 불구하고 실제 출산을 할 정도로 애타심이 크지 않은 경우다(유형A). 딩크족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높은 양육비용 때문이다. 부부가 벌어들이는 수입에 비해 양육비용이 너무 높다면 낳고 싶어도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다(유형B).
세 번째는 자녀가 행복하지 못할 가능성이다. 자녀행복을 위해서 막대한 인적자본의 투자가 소요되어야 한다면 그 투자는 감당하기 어렵다(유형C).
한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으나 성과는 극히 미미하다. 예를 들면 핀란드의 레스티야르비(Lestijärvi)라는 지방정부는 신생아 어머니에게 10년간 매년 1000유로를 지급하는 정책을 10년 넘게 시행한 결과 40만 유로 이상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그동안 인구는 20% 감소했다. 2)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정책들은 대부분 양육비를 낮추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정책이 별다른 성과를 보지 못한 것은 저출산의 요인으로서 유형B 인구의 비중이 많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유형A인구에게는 어떤 정책도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마땅히 유형 C인구를 목표로 저출산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수한 인적자본을 양성할 수 있는 질 높은 공교육이 전제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밝은 미래의 비전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다.
* 해(解, Solution): 경제학에서 최적 조건을 만족하는 ‘해결값’, ‘최적 선택’
2) 출처: E. Hemingway, J. Conboye and R. Milne. (2025.1.29일). The Baby Gap: why government can’t pay their way to higher birth rates. Financi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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