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시장의 역할과 안전자산 지위 변화 가능성
미국 국채는 세계의 안전자산이다. 안전자산은 말 그대로 그 자산의 속성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 자산을 말하며 정부의 과세권과 같은 안전장치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그 요건을 갖추게 된다.
작년 일평균 9100억 달러 이상 거래된 미국 국채시장은 그 규모(28.2조 달러)가 미국 GDP(27.8조달러) 보다 크다. 만기는 1월부터 30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원리금과 지급이자를 인플레이션에 연동한 물가연동국채(TIPS)도 있다. 유동성 높은 자금시장은 다양한 만기구조에 기반한다. 특히 국채를 담보로 신용을 공여하는 RP시장은 글로벌은행이 달러화 자금을 전 세계에 공급하는 배관이다.
국채의 만기별 수익률(금리)을 나타내는 수익률곡선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통상 만기가 길수록 수익률도 높기 때문에 수익률곡선은 우상향한다. 간혹 장기국채 수익률이 단기보다 낮아 일어나는 수익률 역전은 경기침체를 전망하는 유력한 지표다. 모든 침체는 수익률 역전이 선행했다. 2월 하순부터 10년 만기 수익률이 3월 물을 밑도는 역전이 재현되어 침체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미국 국채시장의 중요성
흔히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국채수익률(명목금리)에서 동일 만기 TIPS 수익률(실질금리)을 차감한 값으로 인용된다. 이 값은 작년 3분기 1% 대로 하락했을 뿐 다시 2%대를 넘었다.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높은 물가를 전망하는 것은 공급측면에서 부(-)의 충격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관세 등 2기 트럼프정부의 경제정책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에 대한 채권투자자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미국 국채 수익률 결정요인
미국 국채가 글로벌금융의 안전자산으로 자리 잡은 것은 달러화 중심의 국제통화질서가 1970년대 금을 대체하면서부터다. 당시 미국은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의 막대한 재원조달에 따른 물가상승압력이 누적되어 당초 금 1온스=35달러의 약속을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되자 이 약속, 즉 브레튼우즈체제*를 폐기했다.
* 브레튼우즈체제: 미국의 브레튼우즈에서 발족한 국제 통화 체제로 각국 통화 가치 불안정, 외환 관리, 평가 절하 경쟁, 등을 시정하고 국제 무역의 확대, 고용 및 외환의 안정 등을 목적으로 체결된 체제
이후 국제자본이동성이 높아지면서 미국 국채는 전세 계에 달러화 자금을 공급하는 핵심역할을 수행해 달러화 중심의 국제통화질서는 공고해졌다. 일평균 외환거래액이 1992년 0.8조 달러에서 2022년 7.5조 달러로 9배 이상 증가했는데 증가액의 90%가 달러화다. 전 세계 외환거래 대부분이 달러화를 사거나 파는 것으로 보면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이렇듯 높은 위상은 아무 조건 없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국채는 세계의 안전자산이지만 동시에 한 나라의 빚이기 때문이다. 국가채무는 글로벌금융위기와 팬데믹위기를 거치면서 급증해 위기 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나 GDP대비 120%에 이르고 있다.
한편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비중은 줄곧 감소해 2023년 15%에 불과하다. 실물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위상이 줄어드는 추세는 그만큼 미국 국채에 투자할 외국인이 중요하다는 함의를 준다.
중앙은행을 포함한 외국인 보유 미국 국채는 2000년 1조 달러에서 2024년 8.5조 달러로 늘어났다. 한편 미국 국채시장에서 거래되는 외국인 보유비중은 2010년대 초 최고치(50%)에 달했으나 현재 30%를 밑돈다.
외국인 보유액은 늘어나지만 그 비중은 감소하는 것은 늘어난 국채물량을 외국인이 덜 소화하는 대신 내국인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글로벌경제성장이 안전자산의 수요를 견인할 정도로 충분치 않거나 미국 국채공급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나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채시장의 전망
이 가능성은 글로벌금융위기 후 금값이 꾸준히 오르는 추세에서도 확인된다. 위기 전보다 3배가 올라 온스당 3000달러의 금값은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금보유가 늘어나고 투자자와 헤지펀드들도 가세한데 배경이 있다. 한때 미국 국채를 1.2조 달러까지 보유했던 중국은 4천억 달러를 줄이는 대신 금을 늘렸다.
오르는 금값은 고조되는 지정학적 위험뿐 아니라 미국 국채공급이 위기 전 10조 달러에서 35조달러 이상 폭증한 데 따른 우려에 그 배경이 있다. 그 공급이 제어되지 않는 한 반세기 이상 누려온 특권은 도전받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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