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 정도밖에 이용하지 않으면서도 해지하자니 찜찜해서 계속 유지하는 유료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시즌 오프 세일 기간, 파격 할인가에 혹하여 충동적으로 구매한 불필요한 상품. 성능이 더 좋고 가격도 저렴한 상품 대신, 성능이 조금 떨어지고 가격은 더 비싸지만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제품을 선택하는 행동. 경험해보신 적 있으시지요?
우리는 종종, 머릿속으론 분명히 ‘이러면 안돼!’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어떤 일을 저질러 버리고는 합니다. 경제 활동을 할 때도 예외 없이 마찬가지고요. 그러나 과거 전통 경제학이 전제로 하는 인간은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어 현실과는 괴리가 있었는데요. 오늘은 인간의 비합리성을 주목하며 나날이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학문 ‘행동경제학’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행동경제학이란?
행동경제학이란 ‘인간의 실제 행동을 심리학, 사회학, 생리학적 시각에서 바라본 후 얻은 결과를 규명하려는 경제학의 한 분야’를 의미합니다. (『시사경제용어사전』(2017), 기획재정부) 경제 자체가 인간의 선택 활동의 총집합인데 당연히 심리학,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것 아닌가 의아하신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사실 기존의 주류 경제학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배제하고 발전되어 왔습니다. 인간을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주체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설정했기 때문에, 이러한 합리적인 주체들이 모인 ‘시장’ 역시 반드시 합리적이라는 전제가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과연 인간의 경제 활동이 ‘항상’ 합리적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는 이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인간이 보여주는 비합리적 판단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언제나 완벽하게 합리적이지는 않으며 때로는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주장에서 출발했으며, 이를 증명하기 위해 심리학적 관점을 견지한다는 점에서 주류 경제학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행동경제학의 대표적인 이론들을 실제 사례와 함께 알아볼까요?
일단 한 달만 무료 이용해보세요! 구독 서비스의 유혹
‘첫 달 무료’ 라는 문구,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 보이지요? 넷플릭스 같은 OTT(Over the Top) 서비스, 온라인 오픈마켓 배송 프리미엄 멤버십 등 다양한 구독 서비스들이 첫 달 무료 이벤트를 진행하는데요. 이러한 마케팅 방식 역시 행동경제학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소유하게 됐을 때 해당 물건에 대한 가치를 이전보다 더 크게 부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보유 효과(endowment effect)라고 합니다. 넷플릭스 한 달 무료 이용권을 얻게 되면, 이용권이 없었던 이전보다 이용권에 대한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게 된다는 것이죠. 또한 귀찮음이나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그냥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려고 하는 현상유지편향(Status quo bias)은 이미 가입한 이용권의 해지를 막는 기제로 작용합니다. 결국 무료 이용기간이 종료되어도 서비스를 해지하지 않고 계속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디폴트 옵션이 바꿔 놓은 미국 퇴직연금 가입률
미국의 퇴직연금(401K)제도는 행동경제학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미국은 낮은 퇴직연금 가입률을 두고 고심하던 중, 퇴직연금의 초기 설정 즉 ‘디폴트 옵션’을 변경하기로 합니다. 본래 퇴직연금 비가입이 디폴트여서 가입을 하기 위해 서류를 제출하는 방식(opt-in)으로 운영되던 것을, 퇴직연금 자동가입이 디폴트고 탈퇴를 하려면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방식(opt-out)으로 전환한 것인데요. 2006년 디폴트 옵션이 바뀐 후, 미국 퇴직연금 가입률은 크게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디폴트 옵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원인 역시 앞서 살펴본 현상유지편향 개념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요. 여기에는 디폴트로 정해져 있는 현재 상태를 굳이 서류 작성 등의 적극적 행동을 취해가며 바꾸려고 들지 않는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내가 번 돈 5만원 ≠ 주운 돈 5만원, 심적 회계
주류 경제학대로 우리가 언제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경제 주체라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 5만원과 오다가 주운 돈 5만원은 그 돈의 배경과 관계없이 동일한 가치를 지녀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죠. 내가 번 돈보다 주운 돈이 덜 소중하게 느껴지고 쉽게 써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렇게 동일한 비용을 두고 그 돈의 맥락, 성격, 목적 등에 따라 심리적으로 다른 가치를 책정하게 되는 현상을 심적 회계(mental accounting)라고 합니다.
다음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가 심적 회계를 증명하기 위해 진행했던 설문입니다.
1. 콘서트장 현장에서 50달러짜리 티켓을 사려고 하는데 50달러 지폐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았다면, 50달러를 지불하고 다시 티켓을 구매하시겠습니까?
2. 콘서트 전날 50달러짜리 티켓을 미리 구매하였는데 콘서트장 현장에서 티켓 분실 사실을 알았다면, 동일한 티켓을 다시 구매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실제 실험에서는 첫 번째 질문에 티켓을 구매한다고 답한 사람이 87%, 두 번째 질문에 티켓을 구매한다고 답한 사람이 46%였다고 합니다. 카너먼과 트버스에 따르면, 첫 번째 상황에서는 ‘현금’ 50달러는 잃어버렸지만 그와 별개로 ‘문화비’는 건재하기 때문에 티켓을 구매한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상황에서는 티켓 분실이 이미 ‘문화비’에서 발생한 손실이므로 또다시 ‘문화비’에서 50달러를 추가 지출하는 것이 부담이 됩니다. 똑같은 50달러지만 마음 속의 회계 구분에 따라 심리적 부담감이 다르게 작용하는 것입니다.
마냥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우리의 생활 곳곳에 녹아 있는 행동경제학! 행동경제학을 공부함으로써 기업은 합리적인 조건을 충족시키지 않아도 소비자의 구매를 유도할 수 있는 전략을 짤 수 있고, 반대로 소비자는 비합리적 소비를 자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행동경제학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으신 분들께는 행동경제학으로 2002년, 2017년에 각각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과 리처드 탈러의 저서를 추천드립니다:-)
▲(좌)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2018) (우)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 <넛지>(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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