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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중년이니까 외롭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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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MART_IBK 2013.01.18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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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이니까 외롭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유미주의와 자전적 경험이 담긴 유잉한 장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중년이 위로 받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후덕해 보이는 중년 여성들의 저녁 식사가 한창입니다. 여성들이 모이면 가장 바쁜 신체 부위는 단연 ‘입’입니다. 접시는 바닥을 드러내지만 그들의 수다는 바닥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청춘을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급행 열차처럼 달려온 삶의 모습이, 그들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대화 속에 역력합니다. 


어지간히 시간이 흘렀는지 한 여성이 손가방에서 립스틱 하나를 꺼내 입술 위에 정성스레 도색합니다. 자리를 뜰 참인 것이지요. 옆에 앉은 여성도 립스틱을 꺼냅니다. 다른 여성들도 화장 도구를 주섬주섬 꺼내 화장을 수정하기 시작합니다. 끝날 것 같던 자리가 갑자기 미모와 성형 이야기로 다시 이어지고 그로부터 20여 분이 지나서야 오늘의 파티가 막을 내립니다. 


바야흐로 동안(童顔) 피부와 성형 열풍에 휩싸인 꽃중년 전성시대입니다. ‘예전엔 못살면 하층민이라 했는데 요즘엔 늙어 보이면 하층민’이라고 합니다. 페이스 팝콘의 <미래생활사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고 나면 베개에 우수수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 때문에 불안한 하거나 성형외과 광고판의 ‘Before’와 ‘After’ 사이에서 갈등하는 분들이 있다면 잠시 탐미의 본능을 내려놓고 이 책에 주목해보았으면 합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입니다. 


<오스카 와일드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작가>


봄꽃 같은 젊음이었음을


어느 봄날,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아름다운 초상화를 보면서 영원히 늙고 싶지 않다는 헛된 욕망을 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망은 이루어집니다. 그레이 대신 그를 그린 초상화가 나이를 먹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수려한 외모를 지닌 그레이는 애인을 배신해 자살하게 하면서 악마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관능과 유희를 즐기고 상류층과 하층 계급의 문턱을 넘나들며 퇴폐와 방탕한 생활에 빠져 삽니다. 그의 악행이 거듭될수록 그의 초상화는 점점 일그러집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젊음을 샀다는 소문이 나자 초상화를 돌려달라는 화가를 살해하고, 그림을 골방에 가두어놓은 채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고통과 번민에 싸여 있던 어느 날 그는 속죄하기로 하고 초상화에 칼을 꽂습니다. 다음 날 아름다운 청년의 초상화 옆에 쇠약하고 주름진 사내가 칼에 찔린 채 죽어 있는 것을 하인이 발견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유혹을 없애는 방법, 무엇이 있을까?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은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 그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바질 홀워드, 화가의 친구이자 냉소와 역설의 언변으로 그레이를 유혹하는 헨리 워튼입니다. 그레이를 난잡한 생활로 유인하는 헨리 워튼 경의 말은 작가가 살았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하고 위선적인 도덕률에 일탈의 반기를 듭니다.


“유혹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그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다.” 


“죄는 사람의 얼굴에 저절로 드러나는 법이지. 감출 수가 없어. 하지만 잘못과 악행의 흔적까지 모두 짊어질 초상화가 있어. 어때, 그 그림을 갖는 대신 기꺼이 영혼을팔겠는가?”


“영국인들은 장부를 작성할 때 어리석음을 부(富)로, 악덕은 위선으로 균형을 맞춘다.”


“신은 자네에게 호의를 베풀었네. 하지만 신은 주었던 것을 곧 다시 빼앗아가지. 안색은 누르스름해질 테고 뺨은 꺼지고 두 눈은 빛을 잃을 것이네. 자네는 끔찍한 고통을 느낄 걸세.” 


이 소설이 처음 잡지에 소개되었을 때 평론가들은 얼간이가 쓴 타락한 작품이라고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탐미주의에 독자들은 열광했고, 지금도 그의 묘비석에는 헌사를 아끼지 않는 팬들의 립스틱 자국이 가득합니다. 



불혹이냐 부록이냐 


“청춘이란 무엇이던가. 기껏해야 미숙하고 설익은 시간, 얄팍한 감정과 불안한 생각으로 가득한 시간 아니던가.”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작가의 경구입니다. 청춘의 푸른 초원을 넘고 불혹의 마루턱을 지나온 중년들에게 불어오는 바람은 차고 드셉니다. 누구는 '사십이 넘으니 역사가 보이더라' 하고 누구는 '사십이 넘으니 귀신이 보인다'고 하지만, 사실 보통의 중년에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인 것처럼, 외로우니까 중년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멀어지는 청춘을 조금이라도 보상받으려는 행위에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붓는 것이 아닐까요. 젊게 사는 것을 탓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젊어지려는 욕망에 중독된 영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나이를 먹어야지 나이가 우리를 먹어서야 되겠습니까. 눈주름은 웃음을 끌어당긴 흔적이라고 말하는 어느 시인의 말이 다소 위안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금이 간 그릇에서 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듯 눈에서 살짝살짝 번지는 웃음이야말로 얼마나 고혹적이냐며 주름을 예찬하는 그의 말에 기꺼이 동의해야 합니다. 주름을 억지로 펴지 말고 세월의 세필(細筆)이 우리에게 준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주름 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우리의 치열했던 삶과 아름다웠던 추억을 보듬어주길 바랍니다. 누가 그랬었죠? 불혹이 아니라 부록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본문보다 부록이 더 재미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IBK기업은행 송도테크노지점 이현숙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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