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 유전공학의 발달이 극에 달한 세상.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자신이 가진 염색체로부터 예상 수명, 질병, 성격 등이 판별되어져 시스템으로 분류가 된다.
자신이 가진 유전자의 우수함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는 우생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유전자 조작은 당연한 일이 되고, 열성인자를 가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회의 밑바닥으로 전락한다.
1997년에 제작된 영화 <가타카>는 유전자가 사회 내에서의 신분과 인생을 결정하는, 새로운 사회 질서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비상식적인’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 <가타카> Gattaca, 1997
태어나면서부터 미래가 결정되는 사회
사람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분류작업을 당한다.
가령 부모님의 재산 상태에 따라 부자와 가난뱅이로 분류되어지거나, 학교에 들어가서는 성적에 따라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분류되어진다든지, 조금 더 자라서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서부터는 신용등급이라는 것에 의해 신용우수자 또는 신용불량자로 나누어지는 등 우리의 인생은 늘 무엇인가에 의해 ‘분류’되어져 있다.
영화 <트루먼 쇼>의 각본가로 유명한 앤드류 니콜 감독의 데뷔작인 SF영화 영화 <가타카>의 세계관은 우리 일상에 만연해 있는 이러한 ‘분류’들이 그야말로 극에 달해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빈센트(에단 호크)는 유전자조작을 전혀 받지 않고 부모의 자연임신으로 태어난 아이이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이 유전자 조작을 통한 인공수정으로 태어나는 시대에 부모의 자연임신은 ‘실수’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렇게 태어난 빈센트는 태어나자마자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하고 근시에 걸릴 것이며 예상수명이 30살이라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시스템으로부터 ‘사회부적격자’ 판정을 받는다.
그리고 시스템이 예측한 그의 유전자는 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예측한 그대로 흘러가 심장이 약한, 키 작고 눈이 나빠 안경을 쓴 아이로 성장하게 된다.
반면, ‘실수’를 번복하지 않으려는 빈센트의 부모는 완벽한 유전자 조작과 인공수정을 통해 빈센트의 남동생 안톤을 가진다. 안톤은 유전적으로 모든 것이 빈센트보다 뛰어난 우수한 사회 구성원으로 태어나고 성장한다.
늘 사회부적격자인 빈센트가 못마땅했던 빈센트의 부모는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빈센트에게 현실을 자각하라고 하지만, 빈센트의 눈은 항상 저 먼 우주의 별들에 있었다.
“현실을 알아야지, 빈센트. 니 심장으로는 무리다.”
“엄마, 내 심장은 문제없을 확률도 있어요.”
“문제는 그 확률이 희박하다는 거란다.”
“그래도 할래요. 아버지”
유전적으로 완벽한 동생 안톤과의 바다 수영 경주에서 늘 동생에게 이기지 못했던 빈센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우주탐사에 대한 열망으로 필사적인 노력을 거듭해가던 어느 날, 수영경주에서 동생을 이긴 빈센트는 물에 빠진 동생 안톤을 온 힘을 다해 구해내고는 자신의 모든 기록을 지워버린 후 집을 떠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구입하다
우주항공회사 가타카는 하루에도 12번 우주로 가는 로켓을 쏘아 올리는 우주탐사의 총본산이다.
유전적으로 우수한 엘리트 중에서도 최우수의 엘리트만 모이는 이 곳에서도 가장 우수하여 토성탐사계획의 핵심으로 일하고 있는 제롬 모로우. 하지만 그의 정체는 몇 년 전 자신의 기록을 지운 채 집을 나간 빈센트였다.
유전적으로 부적합자인 빈센트가 어떻게 가타카에 그것도 우주탐사계획의 핵심멤버로 일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유전자 샘플을 통해 개인을 증명하는 유전자 인식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타인의 유전자 샘플로 시스템을 통과하는 일종의 유전자 신분 위조의 덕분이었다.
전문 브로커를 통해 제롬 유진 모로우라는 전 올림픽 수영 은메달리스트의 신분을 사게된 빈센트는 제롬의 집에 같이 기거하며, 제롬으로부터 매일 시스템 통과를 위한 소변, 혈액, 피부조직 등을 제공받아 제롬 행세를 하며 가타카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제롬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어 더 이상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고, 유전적으로 우수한 자신의 신분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금융 시스템을 움직이는 신용이라는 개념은 구성원의 개별적인 신분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생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과거 중세시대의 금융 시스템에서는 왕이라든가 귀족이라든지 성직자 같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만 이러한 신용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일반 평민들은 신분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의 신용을 차용할 수밖에 없었다.
귀족들이 일종의 보증기관같이 타인의 신용을 보증해주고 이익의 일부를 받거나 수수료를 받았다. 이렇듯 신분이라는 것은 신용을 만들어 내는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서 작용하는 것인데, 이것이 위조되기 시작하면 신용사회는 그야말로 모래위의 성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렇듯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하루하루 타인의 신분을 도용하며 살아가던 빈센트에게 위기가 닥친다. 토성탐사계획을 1주일 앞둔 어느 날 가타카의 감독관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살인현장 주변에서 사건과 관계없이 우연히 흘린 빈센트의 속눈썹이 발단이 되어 서류상 존재할리 없는 빈센트가 감독관 살해의 유력한 용의선상에 오른다. 그리고 그 수사를 지휘하는 형사는 바로 빈센트의 동생 안톤이었다.
꿈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다
당연히 동생 안톤은 유력한 용의자가 자신의 형인 것을 바로 알아본다. 어릴 때 부적격자였던 형에게 경주에서 진데다가 목숨까지 구해졌던 그에게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은 잊을 수 없는 치욕이었고, 이로 인해 사회부적격자에 대한 편견이 가득했던 안톤은 당연히 사회 부적격자인 형이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친형을 잡기 위해 수사망을 좁혀가면서 제롬의 신분을 도용하며 살고 있던 빈센트는 위협을 느낀다. 이제 끝이구나라는 생각에 자포자기하는 빈센트. 그런 그를 그의 유전자 신분 제공자인 제롬이 일으켜세운다.
유전적으로 우수할지는 몰라도 자신은 이미 교통사고로 인해 반신불수의 삶을 살고 있고, 유전적으로 부적합할지 몰라도 자신의 능력으로 우주비행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빈센트를 보며 제롬은 문득 느낀다.
빈센트의 존재야 말로 한때 이 세상을 포기했던 자신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빈센트로 인해 제롬은 여전히 살아있고, 그리고 제롬의 신분으로 아무도 도달하지 못한 저 먼 우주로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중요한 수영 경기에서 은메달에 그쳤던 자신을 원망했던 제롬은 좌절한 빈센트를 도와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정말 고마워. 제롬”
“아니야, 빈센트. 난 너에게 내 몸만 빌려줬지만, 넌 내게 꿈을 빌려줬어.”
감독관을 죽인 진범은 잡히고, 빈센트는 위기를 벗어난다. 하지만 이미 진범의 여부를 떠나 어린 시절 자신에게 굴욕을 안겨준 빈센트를 쫒는데 혈안이 된 동생 안톤 앞에 나타나 자신은 여기서 멈출 수 없고 더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에단 호크, 주드 로, 우마 서먼이라는 호화캐스팅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참패했다. 주제가 명확하지 못하고 너무 철학적인 두루뭉술한 SF라는 점이 당시 관객들에게는 호응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더욱 심화되어 가는 시장 자본주의의 불평등과 불공정의 사회가 마치 이 가타카의 사회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미래를 예언한 영화로 최근 새삼 주목받고 있는 중이다.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혹자는 이 영화 <가타카>가 신분도용과 금융실명제에 관한 영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가타카의 사회에서 보면 빈센트는 타인의 명의를 이용하여 본인의 사익을 편취한 사기꾼일 수도 있다. 마치 타인의 신분을 도용하여, 계좌를 개설하는 대포통장처럼 말이다.
가타카의 사회에서는 유전적 정보를 이용하여 취업이나 신분에 차별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불법’일 뿐 그 법을 벗어나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유전적 정보를 이용한다. 빈센트의 훌륭한 점은 이러한 차별과 불합리의 굴레에 굴하지 않고, 이를 이겨냈다는 점이다. 그래서 유전적으로 완벽한 동생 안톤은 완벽한 자신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형에게 질 수 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형이 날 이길 수 있었지?”
“난 돌아갈 힘을 남기지 않았으니까.”
어떤 세상에 있더라도 꿈을 향한 시도만큼은 포기하지 않고 살았던 빈센트는 결국 자신이 꿈에 그리던 토성으로 떠나며, 이 영화는 끝을 맺는다.
시스템, 그 너머를 보자
금융위기 이후 사회는 병들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퍼져있는 패배주의와 사회 불평등에 대한 분노는 정말 심각한 상태로 보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면서 누군가가 위로를 던지더라도, 사람들은 이를 비난한다. 그 아픔을 겪어보았냐고, 청춘은 무조건 아파야 하냐고. 위로가 위로로 들리지 않을 만큼 아프고 힘이 든다는 이야기이리라.
이 영화를 ‘무작정 꿈을 향해 달려가 보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거야’ 라는 전근대적인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난을 극복하고 꿈을 향해 나아가면,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지금과 같은 시대에 성공 자기 계발서에 흔하게 나오는 그런 이야기로는 이 영화가 주는 진정한 메시지를 이해할 수도 없고 이미 꿈을 향해 달려가다 좌절을 해본 지금 시대 사람들은 그 어떤 감흥도 없을 지도 모른다.
영화가 개봉되었던 1990년대가 아니라 수없는 좌절을 맛본 2015년의 시점으로 이야기하면 빈센트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관객들에게 이야기한다. 자신이 어떤 틀에 있다면, 그 틀에 갇히지 말고, 그 틀을 인정하지 말라고 말이다. 빈센트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을 얽어매는 틀을 인정하지 않았다.
시스템은 언제나 자신에게 한계와 제한을 이야기하고,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의 안내는 정말로 정확하고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빈센트는 그러한 틀을 멋지게 벗어난다. 그것만이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언제든 꿈에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우리 하나 하나 그렇게 약한 인간들이 아니니까 말이다.
세상에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되면 만화 슬램덩크의 유명한 명대사 “포기하는 순간 그 경기는 지는 것”이라는 말처럼 지금의 현실이라는 틀에 얽매여 금방 포기하지 말고 다시 한 번 멋지게 일어서는 건 어떨까 그냥 일어서서 달려가다 보면 어느새 꿈은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문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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