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근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인류가 물물교환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거래행위를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잉여자원을 유효한 자원으로 바꾸는 방법을 깨닫게 되면서 모든 ‘물건’에는 ‘가치 (value)’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사과 한 알은 콩 30알, 양 한 마리는 토끼 20마리라는 식으로 가치들이 매겨지고, 이렇게 매겨진 가치가 사람들 사이에서 ‘합의’로 이어지면 사실 금융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위해 필요한 필수 요소들은 갖춰지는 셈인 것이죠.
하지만, 잘 아는 개인끼리 거래를 할 경우에는 거래 상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당사자들 간의 문제로 제한되고 혼란은 최소화되겠지만, 이러한 거래를 전문으로 하는 상인이 출현하고 그리고 이들의 편의를 위해 현물을 대체하는 화폐가 출현함에 따라 거래 활동은 단순한 1:1의 물물교환이 아니라, 신용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으로 변해 갑니다.
금융의 역사에 있어 이 ‘신용’의 개념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현물들이 오고가지 않더라도 사람들 간의 약속과 합의로 거래가 성립될 수 있고 이러한 신용을 보증하는 조직이나 단체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금융은 인류 사회 깊숙하게 자리 잡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금융 시스템이 급속도로 성장하게 된 계기를 십자군 전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십자군 전쟁을 다룬 수많은 영화 중 가장 수작으로 꼽히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통해 금융의 ‘근원’과 초기 은행의 모습을 알아볼까 합니다.
영화 속 금융이야기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 : 영화 <카운터페이터> : 위조지폐와 하이퍼 인플레이션
두 번째 이야기 : 영화 <로그 트레이더> : 선물거래와 베어링스 은행 파산사건
세 번째 이야기 : 영화 <킹덤 오브 헤븐> 십자군 전쟁과 템플기사단 그리고 은행의 시작-1
콘텐츠로 보는 금융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영화 <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 (2005년)
세계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유럽사 아니 세계사에 있어 십자군 전쟁이 차지하는 의미는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1095년부터 1291년까지 간헐적으로 발생한 기독교와 이슬람교간의 일종의 종교전쟁으로 성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레바논 지역의 패권을 놓고 벌인 양 진영의 길고긴 대립의 역사를 의미합니다만, 실제로 십자군전쟁은 지금도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중동 분쟁의 씨앗으로서 현재까지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이러한 십자군 전쟁의 길고 긴 역사에서 중간쯤에 해당하는 시기로 여러 차례의 십자군 원정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하고, 역사적으로도 많은 이야기꺼리를 낳은 ‘히틴의 뿔 전투’가 있었던 제2차 십자군 원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 발리앙도 실제 역사상의 인물인 ‘이벨린의 발리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세부적인 설정이나 에피소드는 픽션에 맞게 허구로 가공된 곳이 몇 군데 있긴 하지만, 영화 자체를 관통하는 큰 줄기는 실제 역사를 많이 차용하고 있습니다.
신의 뜻이다 (God wills it!)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의 주인공 발리앙은 프랑스 어느 작은 영지의 대장장이입니다. 아비 없는 사생아로 태어나 어머니마저 잃고 홀로 살고 있던 어느 날, 십자군 원정을 떠났던 영주의 동생 고드프리가 찾아와 발리앙에게 자신이 발리앙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동생인 고드프리가 상속자가 없어 고드프리가 죽으면 그의 모든 재산이 자기 것이 될 것이라 믿었던 고드프리의 형인 영주는 뜻밖이었던 발리앙의 존재를 알고는 아들을 시켜 발리앙을 죽이려고 하고, 목숨을 위협받게 된 발리앙은 영지를 떠나 수십 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함께 먼 예루살렘 성지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아버지, 예루살렘에서는 죄를 씻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인가요?”
“같이 가서 알아보자꾸나.”
당시 예루살렘은 문둥병이라 불리우던 나병을 앓고 있던 보두앵 4세가 통치하고 있던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기독교 국가라고는 하나 이슬람과 기독교가 상호 공존하고 있으며, 보두앵 4세는 관용과 화합으로 둘을 포용하고 이유 없이 이슬람교도를 학살하는 템플기사단을 교수형에 처하는 등 애초 성지 예루살렘에서 이슬람교도를 몰아내기 위해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교황의 입장에서 보면 이적행위를 일삼는 이단자였습니다.
하지만 보두앵 4세의 이러한 정책은 사실 당시의 예루살렘의 상황을 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처럼 당시 예루살렘도 이슬람 한가운데 위치해있던 터라 이슬람과의 교류 없이는 살아가기가 힘든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고, 그동안은 유럽 각국에서 보내준 지원으로 분열되어 있던 이슬람 세력들을 억누르고 있었으나 살라딘이라는 전략가의 등장으로 점차 강력해지고 있던 이슬람 세력에 대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책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광신주의에 가까운 이 템플기사단을 이끌던 기 드 뤼지냥은 이슬람교도들을 인정하지 않고 이슬람교도들의 캐러반 (행상)을 습격하여 무저항의 그들을 학살하며, 살라딘을 포함한 이슬람 진영을 자극하게 됩니다.
“신앙은 믿을게 못되오. 야만적인 학살을 자행하는 자들 중 너무 많은 이들에게서 신앙으로 가득 찬 눈을 보았다오.”
여행 도중 형이 보낸 추격자들의 칼에 상처를 입고 신음하다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영주의 자리에 오른 발리앙은 신의 뜻이라고 외치며 약한 이슬람교도들을 학살하는 템플기사단의 모습을 보며 경악합니다. 그런 그에게 죽음을 앞두고 있던 보두앵 4세는 그의 영주 승계를 인정하며, 자신의 후사를 부탁합니다.
“순례자들의 길을 지켜주게나. 특히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을 보호해주게나. 예루살렘에서는 모두가 환영이네. 유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옳기 때문이야.”
같은 아군조차 고개를 설레설레 젓게 만드는 이들의 무자비한 학살은 점차 심각해지고, 오로지 신만을 위해 이 전쟁에 참여한 템플기사단은 당초의 목적을 잊어버린 채 살육만 일삼다가 급기야 어느 날 습격한 캐러반에서 발견한 이슬람의 지도자 살라딘의 여동생마저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무참히 살해합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살라딘은 군사를 일으키고, 이슬람의 대군에 의해 포위된 예루살렘에서 발리앙은 죽은 보두앵 4세와의 약속에 따라 사람들을 지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목숨을 걸고 살라딘과의 마지막 담판에 나섭니다.
“도시를 넘겨주겠나.”
“이 도시를 잃기 전에 다 태워버리고 말겠소. 당신의 성지이자 우리의 성지. 사람들을 미치게하는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차라리..그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이 짧은 대화를 통해 발리앙과 살라딘은 서로가 이 전쟁의 무의미를 깨닫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 땅이 무엇이길래, 그렇게 많은 이들의 생명을 희생할 가치가 있는 곳인지, 그리고 그것을 꼭 누군가의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인지. 짧은 교감을 통해 서로의 의사를 확인한 발리앙에게 살라딘은 여동생과 동족의 복수를 하기 위해 모든 기독교도들을 죽여야 한다는 참모들의 원성을 누르고 살라딘의 이름에 맞는 통큰 양보를 통해 신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기독교도들의 생명을 보증합니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으로 보는 금융이야기, 2편은 내일을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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