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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정보톡

은행의 탄생과 진화

by IBK.Bank.Official 2011. 2. 26.


지난 포스팅인 '화폐의 기원과 돈의 속성'에서는 제목 그대로 돈의 유래와 함께, 그 특성을 알아봤는데요.

오늘은 그 돈이 모이는 은행이라는 곳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으며, 또 어떻게 발전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은행의 기원

이전 포스팅을 통해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점토물표에 대해 간략히 설명 드렸었는데요. 설명을 보시게되면 일종의 금융기능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은행 최초의 기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생겨났다는 것이 거의 정설로 굳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 오래된 고대시대에 돈을 빌리고, 빌려주고, 또 맡기도 한데다가 오늘날로 치면 신용장(은행이 거래처의 요청으로 신용을 보증하기 위하여 발행하는 증서)을 발급하기로 하는등 약 4,000년 전의 제도라고 생각하기에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서 그 내용을 좀 더 들여다보면 각 점토판마다 빌린 물품을 갚으라는거래 기록이 나오고, 당연히 빌려 준 쪽에서 돌려받을양과 지급기일을 작성한 다음 봉인한 상태로 간직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대부체계 역시 꽤 세련된 형태여서 빚은 양도가 가능했고, 이름이 적힌 채권자가 아닌 '소지자'에게 지급했으며, 점토판 영수증이나 환어음은 왕궁이나 사원에서 곡물과 여타 상품을 보관하는 사람 앞으로 발행 됐다고 합니다. 또, 차입자는 이자를 지급해야 했는데 그 비율은 보통 20% 정도 였다고 하네요.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자의 개념이 가축 무리가 자연 증가 한다는 사실에서 나왔다는 점
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ㅎㅎ


시간이 지나면서 바빌로니아 문명이 들어섰고, 신전을 중심으로 은행업이 보다 발전해 나가기 시작했으며 특히 바빌론, 티레, 시돈과 같은 상업 중심지들은 자체적인 필요에 의해 더욱 발전해 나갔다고 합니다.


근대 은행의 탄생

오늘날 우리가 은행이라고 부르고 있는 형태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갖춘것은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였습니다. 그 시초는 베니스에 있던 유태인 고리 대금업자들이였는데요.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중세 시대에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것은 하나의 죄악이였습니다.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가하면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 준 고리대금업자가 파문을 당하는 사건까지 있었으니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 파문 : 중세 기독교도에 있어서 파문을 당한다는 것은 다른 기독교도와의 교류가 금지되었고 교회가 신자에게
             준 세속적보호권도 박탈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사회에서 추방되는 것과 마찬가지였음.


따라서 어느 정도의 부를 쌓아올렸으면서도, 기독교를 믿지 않았던 유태인들이 자연스럽게 대부업(금융업)을 하게 되었던 것이죠. 은행을 의미하는 단어인 'Bank'는 유대인들이 길가에 탁자를 놓고 벤치(bench)에 앉아 업무를 했던 것에서 유래가 됐습니다. (bank와 bench의 어원이 같다고 하네요^^)

※ Bank의 어원이 이탈리아 말로 '탁자'를 뜻하는 반코(banko) 또는 반카(banka)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또한,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유럽 각지에서 무역이 성행하고 이에따라 모여든 상인들이 각각 잡다한 종류와 품질의 화폐를 사용하는 바람에 상업적 교역의 원활한 수행이 어려지게 됩니다. 이에따라 일부 무역상들은 다른 나라 돈을 바꿔 주면서 수수료를 챙기게 되었고 이를 전문적으로 하는 환전상이 등장하게 되었죠.


실제로 근대적인 은행의 기초를 닦은건 '메디치'라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가문이였는데요. 이 메디치가 역시 작은 환전업무가 첫 시작이였습니다. 1390년대에 들어서면서 명성을 쌓기 시작한 메디치가는 금융업을 통해 쌓은 부를 바탕으로 교황 2명, 프랑스 왕비 2명, 공작 3명 등을 배출했고, '군주론'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가 가문사를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또, 미켈란젤로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었던 유명한 예술가와 학문 전 분야에 걸쳐 후원이 이뤄지기도 했는데요. 제가 이런 얘기들을 하는 것은 그 만큼 메디치가의 영향력과 부가 엄청났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실질적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것이 '메디치가' 였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였죠.)

메디치가는 최초의 근대식 은행을 탄생시킨 것 이외에도1420년대 중반에는 유럽 곳곳에 지점을 새워 최초의 은행 지점 탄생과 해외진출이라는 업적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은행의 진화

큰 성공을 거둔 이탈리아의 은행 제도는 이후 네덜란드와 영국, 스웨던 등에서 보다 발전하게 되었고 상업적으로 역시 커다란 성공을 안겨주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금융제도 역시 지속적인 발전을 하게 됐는데요. 17세기가 되자 사적 금융 뿐만이 아닌, 공적 금융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각자 독특한 금융제도를 마련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외환은행은 오늘날 너무나도 자연시되는 수표와 자동 이체 시스템등을 처음으로 만들었으며, 스웨덴 중앙은행인 리크스방크(Riskbank)는 부분지급준비금제도(Fractional Reserve Banking System)를 탄생시켰죠.

                                           <현재 영국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 은행>

또한 영국의 잉글랜드 은행은 영국 정부의 전쟁 비용 조달을 위해(정부 빚의 일정 부분을 은행 몫으로 전환하는 방식) 창설되어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 되었는데 약속 어음 형태의 은행권 발행을 부분적으로 독점할 수 있게 되었고, 이 덕분에 은행 계좌 없이도 거래가 원할히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17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은행업은 18세기 후반 영국의 경제 성장에 촉매로 작용하게 되었고, 산업혁명의 발전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은행의 역할과 여러 금융제도가 탄생하게 되었고, 많은 논란들이 있었는데요.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오랫동안 지속됐던 논란이 바로 화폐의 금 본위제 논란이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을 통해 하도록 할테니 기다려주세요. ^^

   김환 대리의 지난글 보러가기
 
  저축은행 사태의 원인과 뱅크런
  돈과
금융 그리고, 경제의 상관관계
  화폐의 기원과 돈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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