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로 떠나는 세계 여행] 1,000루블로 떠나는 러시아



경제활동의 기본이 되는 돈 중에는 지폐가 있습니다. 대부분 세계 각국의 지폐에는 그 나라의 역사, 문화 그리고 과학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글은 세계 각국의 지폐 속에 담겨져 있는 인물, 장소, 사물에 대해 쓴 글입니다. 지폐를 통해 그 나라의 역사, 문화 그리고 과학을 함께 경험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첫 번째 이야기로 러시아 지폐 속의 세계유산, ‘1000루블 속 건축물과 인물’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화려함과 섬세함의 조화, 1000루블 속 건축물 


성 요한 세례 교회(St John the Baptist church) 


 

 성당 입구 : 외관은 광택타일(glazed tiles)과 붉은 벽돌의 섬세한 문양과 조화가 돋보입니다.




러시아 야로슬라블 (Yaroslavl)


코토로슬 강 넘어 보이는 야로슬라블 성당군



야로슬라블(Yaroslavl, 러시아어: Ярославль)은 수도 모스크바(Moscow)에서 북동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곳으로 볼가 강(Volga)과 코토로슬 강(Kotorosl River)이 합류되는 지점에 있습니다. 러시아 서부 야로슬라브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약 60만 명(2002년)입니다. 


야로슬라블은 11세기 초 로스토프(Rostov) 공국의 변경 식민지로 처음 세워진 뒤 점차 그 지리적 이점을 살려 주요상업지구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곳은 도로와 철로 그리고 수로가 교차되는 중요한 교통 지점인데요. 13세기 로스토프 공국으로부터 독립해 자치권을 획득했으며 17세기에는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로 성장하였습니다. 


18세기 야로슬라블은 카트린느 2세(Catherine II, Catherine the Great, 1729~1796, 재위1762-1796)의 대규모의 도시 계획에 따라 신고전주의(Neo-classical)의 영향을 받은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이 지역이 번영을 누리던 17세기에는 수많은 수도원과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건물들은 야로슬라블 형식(Yaroslavl type)으로 칭해지는 건축 방식으로 지어졌습니다. 붉은 벽돌로 건물을 지은 후 외부를 밝은 색 타일로 장식하는 것이 야로슬라블 형식입니다. 성 요한 세례 교회(St John the Baptist church)는 17세기 야로슬라블 건축의 절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양파모양의 청록색 지붕이 인상적인 이 붉은 벽돌 건물은 17세기 말에 지어진 것으로 내부와 외부 모두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외부는 타일(glazed tiles : 광택제 바른 타일)과 벽돌의 섬세한 문양과 조화가 돋보이며 내부는 긴 세월에도 잘 보존되어 있는 프레스코화가 벽면과 기둥을 온통 뒤덮고 있습니다. 7층 45M 높이의 종탑은 1690년대 중반 건축 되었습니다.



※ 프레스코화 : 소석회반죽 벽에 그려지는 벽화기법

인류회화사에서 가장 오래된 그림의 기술 혹은 형태로 여겨집니다. 본래 뜻은 회반죽이 마르기 전, 이탈리아어로 프레스코(신선)할 때 물로 녹인 안료로 그리는 기법으로 그려진 벽화를 말합니다



종교적 건축물 외에도 야로슬라블에는 오랜 역사를 가진 극장, 시청 건물 등도 위치해 있습니다. 야로슬라블의 볼코프 극장 (Volkov Theater)은 18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으로 러시아의 가장 오래된 극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청 건물 또한 18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여러 개의 창이 인상적입니다.


러시아 최초의 극장(1750년), 각종 연구기관·건축박물관·역사박물관 등이 있으며, 역사적 기념물로는 12세기에 건립된 스파소프레오브라젠스키 수도원·요한교회, 17세기에 건립된 성모승천교회·선지자 엘리야교회·니콜라나데인교회·상트이반교회 등이 있습니다. 구시가지는 200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러시아의 황금기를 이끈 1000루블 속 인물 



야로슬라프 1세




야로슬라프 1세는 키예프공국(公國)의 대공(大公). 발트해의 이민족을 쳐서 유리에프를 건설하였고, 러시아 최고의 법전인 《야로슬라프의 법전》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교와 그 문화의 보급에 힘썼습니다.(중복 삭제)


러시아 역사에서 지혜로운 자로 불리며 키예프 러시아를 부흥시킨 인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부친인 블라디미르 1세가 낳은 12명의 아들 중 3남인데, 아버지가 사망하고 난 뒤 키예프 러시아의 통치권을 두고 형 스뱌트폴크를 물리치고 대공이 되었습니다. 


당시 키예프 러시아는 여러개의 작은 도시국가로 분할되어 있었는데 블라디미르는 여러명의 아들에게 도시를 물려주었으나 장자인 스뱌트폴크가 동생을 살해하고 자신의 지배력을 확대하였습니다. 

이에 야로슬라프가 군사를 이끌고 형과 전투를 벌여 20년 동안 싸움이 계속 되다 마침내 1036년 형과 전투에서 승리하여 키예프공국의 최고 통치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야로슬라프가 통치한 기간은 키예프 러시아의 황금기로 평가됩니다. 그가 재위 중에 몇 차례에 걸쳐 이웃 여러 나라를 정복하기 위하여 군대를 보냈고, 1030년에는 발트해의 이민족을 정복하여 유리에프를 건설하였습니다. 1036년에는 변방에서 러시아를 위협하던 유목민 페체네그를 키예프 부근에서 완패시켰습니다. 


내정면에서는 러시아 최고(最古)의 법전인《야로슬라프의 법전》을 만들었고, 한편 그리스도교와 그 문화의 보급에 힘썼습니다. 자기 자신도 노르만 계인 스웨덴의 왕녀와 결혼했을 뿐 아니라, 왕녀들을 프랑스·노르웨이·헝가리 등의 왕에게 시집 보내어 서구 제국과의 통상·우호관계를 맺었습니다. 

키예프에 소피아대사원을 건축하였고 당시 키예프 러시아를 유럽의 프랑스, 영국 보다 뛰어난 문명국가로 발전시켰습니다. 야로슬라프 1세는 러시아 역사에서 매우 비중 있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지폐 한 장에 담긴 러시아의 화려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 어떠셨나요? 앞으로 지폐 속에 담긴 세계명소 여행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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